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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문학] <모래 사나이>와 <호프만의 이야기> (진회숙) | 2010.07.07 |
Music + Literature
광기와 환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
- 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글 _
진회숙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사진 _
국립오페라단 <호프만의 이야기>, 국립 발레단 <코펠리아>
17~18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계몽주의 사상의 핵심은 이성(理性)이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이 우주와 세계는 물론 인간 자신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이성을 통해 사회와 자연이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교회와 절대군주제에 반기를 들고 자연권에 기초를 둔 정치적 민주주의를 주장했으며, 그 영향으로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몽주의는 그 자체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에 이어 찾아온 공포정치는 이상적인 정치제도에 대한 회의를 낳았고, 종교가 떠난 자리에 대신 들어선 이성은 하느님 나라에 버금가는 위안과 안식을 인간에게 가져다주지 못했다.
이런 인간의 이성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낙관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것이 바로 낭만주의이다. 인간에게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 낭만주의자들은 감정, 꿈, 광기, 환상의 세계로 눈을 돌렸다. 그들은 정신착란에 빠지거나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머릿 속에 떠오르는 온갖 과도한 감정과 충동들을 그대로 자기 작품에 담았다. 이렇게 망상과 광기에 사로잡혀 쓰인 낭만주의 작품 중에서 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는 그 증세가 가장 심한 것 중 하나에 속한다.
E.T.A 호프만은 독일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유능한 법률가에다 작곡가, 음악비평가, 극장의 음악장, 캐리커처 화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낮에는 법률가로 일하고, 밤에는 화가, 작곡가, 음악가, 시인, 삽화가 등으로 활동하며 정력적인 삶을 살다가 마흔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만 요절하고 말았다.
눈을 빼가는 모래 사나이
<모래 사나이>는 호프만이 서른여덟 살 때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의 지배적인 요소는 ‘눈’이다. 여기서 눈은 두 가지 상반된 개념으로 나타난다. 나타나엘의 약혼녀 클라라의 눈은 사물을 합리적으로 바라보는 이성의 눈을, 나타나엘의 눈은 광기와 망상에 사로잡힌 감정의 눈을 대변한다. 나타나엘의 눈이 더 이상 이성적인 사물보기를 멈춘 것은 그 마음속에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아이들의 눈을 빼 가는 모래 사나이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래 사나이는 아주 나쁜 사람이지. 아이들이 자러 가기 싫어하면 나타나서 아이들 눈에 모래를 한 줌 뿌린단다. 그리고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그것을 주워서 자루에 담아 자기 새끼들에게 먹이려고 반달로 돌아가지. 달에 있는 새끼들은 둥지에 앉아 올빼미처럼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어린 애들의 눈을 콕콕 쪼아 먹는단다.”
나타나엘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시무시한 모래 사나이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밤마다 그 모래 사나이가 나타나엘의 집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쿵 쿵” 모래 사나이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모래 사나이가 온단다. 어서 잠자리에 들 거라.”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침실로 보내곤 했다.
모래 사나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으며, 자기 아버지와 밤마다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궁금했던 나타나엘은 어느 날 몰래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모래 사나이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는 놀랍게도 마을에 사는 늙은 변호사 코펠리우스였다. 코펠리우스는 나타나엘의 아버지와 함께 무엇인가를 실험하고 있었는데, 작가는 그것이 당시 유행하던 연금술이라고 넌지시 암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타나엘의 아버지는 실험 도중 약품이 폭발해 사망하고 만다. 사망원인은 약품 폭발이지만 나타나엘은 사악한 코펠리우스가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고 믿는다.
그 후 어느덧 성인이 된 나타나엘은 자기를 찾아온 코폴라라는 장사꾼이 아버지를 죽이고 달아난 코펠리우스일 것으로 생각한다. 나타나엘에게 코펠리우스는 ‘눈’을 의미한다. 소설 <모래 사나이>에는 코폴라가 나타나엘에게 자기가 가진 ‘눈들’을 보여주는 장면이 자세히 나온다.
그러나 코폴라는 방 안으로 쑥 들어와서 찡그린 큰 입으로 흉측한 웃음을 짓고 긴 잿빛 눈썹 아래 작은 눈을 쏘는 듯이 번득이면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하, 기압계가 필요 없어요? 기압계가 필요 없다? 그러면 눈은 어떻소? 아주 멋진 눈을 가져왔는데.”
나타나엘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미친 사람 같으니. 어떻게 눈을 가지고 올 수 있어? 눈, 눈알 말이오?”
그런데 그 순간 코폴라는 기압계를 옆으로 내려놓고 커다란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어 코안경과 보통 안경들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자, 안경, 코에 걸치는 안경이오. 이것들이 내가 가져온 눈이오. 아름다운 눈!”
코폴라가 계속 안경을 꺼내놓자 책상 위가 온통 이상한 빛을 띠면서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수천 개의 눈알이 경련하듯 실룩거리며 나타나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타나엘은 책상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코폴라는 더 많은 안경을 꺼내놓았고, 번쩍거리는 안경알들은 이글거리는 눈알처럼 점점 더 사납게 서로 뒤엉켜 튀어 오르며 피처럼 붉은빛을 나타나엘의 가슴에 쏘아댔다. 나타나엘은 끔찍한 공포에 휩싸여 소리쳤다.
“그만해. 그만! 이 끔찍한 인간 같으니라고!”
망원경, 세상을 바라보는 매개체가 되다
나타나엘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자 코폴라는 이번에는 망원경을 꺼내 그에게 사라고 했다. 나타나엘은 작은 휴대용 망원경 하나를 골라 들
이윽고 파티가 시작되고, 스팔란자니는 자기 딸 올림피아를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스팔란자니는 올림피아가 합시코드나 기타, 혹은 하프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한다. 그 후 드디어 올림피아가 하프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인형의 아리아>이다.
<인형의 아리아>는 낭만주의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와는 느낌이 다르다. 뚝뚝 끊어지는 음형과 기계적인 콜로라추라 패시지가 이것이 사람의 노래가 아닌 인형의 노래라는 것을 암시한다. 중간에 태엽이 풀려서 음이 내려가고 템포가 느려지면서 인형의 머리가 아래로 고꾸라지는 부분이 나온다. 스팔란자니가 뒤로 돌아가 태엽을 감자 인형이 다시 일어나 예의 그 기계적인 목소리와 동작으로 노래를 계속한다. 이런 올림피아의 모습을 소설에서는 나타나엘의 친구 지그문트의 말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시선이 완전히 생명의 빛이 없고 시력이 없는 것 같다고나 할까. 걸음걸이도 이상하게 규칙적이고, 모든 거동이 태엽을 감은 기계 장치로 조작되는 것 같아. 피아노를 치거나 노래하거나 춤추는 게 인위적으로 정확한 박자를 갖춘 혼이 없는 기계 같아.”
그러나 마법 망원경을 통해 올림피아를 바라보는 나타나엘은 이런 친구의 말을 아주 언짢게 생각한다. 노래가 끝난 후 손님들이 모두 저녁을 먹으러 만찬장으로 가자 방에는 호프만과 올림피아 단둘 만 남게 된다. 호프만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올림피아는 “네”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에 모두 “네”라고 대답한다. 소설에서도 올림피아는 나타나엘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아 아 아”하는 신음만 내는 것으로 나온다. 나타나엘은 이런 올림피아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이성의 화신인 약혼녀 클라라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면 꼭 대답하거나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곤 했는데, 올림피아는 한마디 대꾸도 없이 그의 말을 모두 들어주기 때문이다. 호프만의 사랑 고백에 올림피아가 “네”라고 대답하자 호프만은 뛸 듯이 기뻐한다. 그 후 두 사람은 함께 춤을 춘다. 하지만, 춤이 점점 빨라져 호프만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그런데도 올림피아의 춤은 멈추지 않고 결국 호프만은 기진맥진해서 쓰러진다.
그런데 바로 그때 화가 잔뜩 난 코펠리우스가 들어온다. 코펠리우스는 스팔란자니의 요청을 받고 올림피아의 눈을 만들어주고 수표를 받았는데, 그것이 바로 부도어음이라는 것을 알고 분개해서 그를 찾아온 것이다. 화가 난 코펠리우스는 올림피아를 산산조각낸다. 호프만은 그제야 올림피아가 인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에서는 이 장면에 더 끔찍하게 그려져 있다. 스팔란자니와 코펠리우스가 서로 싸우다가 올림피아를 산산조각냈을 때, 나타나엘이 방으로 들어와 그 장면을 목격한다.
나타나엘은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올림피아의 밀랍 얼굴에 눈 대신 검은 구멍만 나 있는 것을 그는 또렷이 보았던 것이다. 올림피아는 생명 없는 인형이었다. 그때 나타나엘은 바닥에 피투성이가 되어 뒹굴면서 그를 바라보는 두 개의 눈알을 보았다. 스팔란차니는 다치지 않은 손으로 두 눈알을 집어 나타나엘에게 던졌고, 눈알은 그의 가슴에 명중했다. 그 순간 광기의 맹렬히 불타는 발톱이 그를 움켜잡았고, 내면까지 파고들어 모든 감각과 생각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의 제1막은 호프만이 팔다리가 떨려나간 올림피아를 보고 경악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비록 결말이 다소 파국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오페라는 소설보다는 덜 기괴하다. 이는 아마 음악 때문일 것이다. 오펜바흐는 호프만의 원작이 보여주는 기괴함과 광기를 음악을 통해 다소 순화시켜 놓았다. 중간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부르는 경쾌한 합창도 나오고, 올림피아가 부르는 아름다운 아리아도 나온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 오페라를 보고 있으면 무섭다기보다 과학에 대한 맹신, 이성이 마비된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가볍고 유머러스한 풍자라는 느낌이 든다. 올림피아가 부르는 <인형의 아리아>는 기계와 과학에 대한 작곡가의 상상력이 지극히 동화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런 태도를 견지했기에 오펜바흐는 앞으로 더 나가지 않았다. 올림피아가 인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낸 것이다.
광기와 환각, 비극을 불러오다
하지만 <모래 사나이>의 결말은 엽기적이다. 올림피아가 인형이라는 것을 안 후에도 나타나엘은 망원경을 버리지 않는다. 올림피아와의 일을 겪은 후 다시 이성의 세계로 돌아왔지만, 그의 망원경은 언제라도 그를 환각과 마법의 세계로 데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나타나엘은 쉽게 망원경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무의식 속에서 망원경과 안경은 곧 그의 ‘눈’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의 눈을 뽑아 가는 모래 사나이로부터 빼앗긴 눈. 그 원초적 박탈감이 그로 하여금 눈에 집착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집착하던 그 눈은 차갑고 합리적인 이성의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광기와 환각의 또 다른 이름이었으며, 바로 여기에 나타나엘의 근원적 비극이 있다.
어느 날 나타나엘은 망원경을 꺼내서 옆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 앞에 클라라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나타나엘의 맥박과 혈관이 경련을 일으키는 듯이 움찔했다. 그는 아주 창백한 얼굴로 클라라를 응시했다. 그러나 곧 이리저리 희번덕거리는 두 눈알 사이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으며, 나타나엘은 마치 쫓기는 짐승처럼 사납게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허공으로 뛰어오르면서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와 더불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나무인형아, 빙빙 돌아라. 나무인형아, 빙빙 돌아라.”
그리고는 나타나엘은 거센 힘으로 클라라를 붙잡더니 탑 아래로 내던지려 했다.
클라라는 오빠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나타나엘은 높은 층계의 계단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다 코펠리우스가 있는 것을 보고 “그래. 아름다운 눈이야. 아름다운 눈이야.”라고 외친 다음 난간 위로 몸을 던진다. 돌 바닥에 떨어진 나타나엘의 머리가 산산조각이 난 것을 보고 코펠리우스는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모래 사나이>의 결말이다. 이런 식의 엽기적인 결말은 19세기 초반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표현주의와 정신분석 등이 대두하면서 호프만의 작품이 새롭게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확실히 호프만의 작품은 19세기적이라기보다는 20세기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펜바흐의 음악은 <모래 사나이>라는 전위적인 소설을 담기에는 너무 ‘낡은’ 그릇이었다.
사실 오펜바흐는 호프만의 소설을 오페라로 만들기에는 너무 ‘명랑한’ 작곡가였다. <지옥의 오르페우스> <아름다운 엘렌> <즐거운 파리 아가씨>에서 보듯이 그는 오페라를 통해 풍자와 해학을 선사했던 오페라계의 코미디언이었다. 그는 호프만의 원작을 자기식으로, 더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프랑스식으로 번역했고, 따라서 <모래 사나이>가 지닌 표현주의적인 측면은 폐기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오페라는 오페라,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작품은 그것이 어디에서 모티브를 얻었든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가치를 지닌다.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이 소설을 완전한 동화 버전으로 바꾸어놓은 들리브의 발레 음악 <코펠리아> 역시 그 자체의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프만의 이 매력적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것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한 오페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작품에서 특별히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작가가 창조해낸 ‘눈’의 모티브이다. 탁자 위에서 수많은 눈이 나타나엘에게 무시무시한 안광(眼光)을 발하는 장면과, 스팔란자니가 바닥에 떨어진 올림피아의 눈알을 나타나엘에게 던지는 장면. 특히 이런 장면에서 무의식을 파고드는 신경질적인 불협화음과 엽기적인 리듬으로 전율을 느끼게 하는 현대판 <모래 사나이>가 나오면 어떨까?